닌자의 황금타임이라 불리는 시간은, 과연 닌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용했다. 밤새들이 작게 지저귀는 소리, 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고요한 밤을 울려 언뜻 운치마저 풍겨오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6학년의 기숙사에서는 어느새 야간 훈련을 나갔는지 소리는커녕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4학년 기숙사에서는 이제 잠들 준비를 하는 것인지 천이 스치는 소리,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고요한 밤공기 사이사이로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조용했다. 이미 전부 잠들어 버렸을 하급생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한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로. 여느때와 같은 조용하고 평온한 밤이었다.
헤이스케는 교장선생님의 심부름. 로반은 실습.
뜻하지 않게 찾아온 혼자만의 고요함 속에서 따분하게 붓을 놀리며 칸에몽은 멍하니 창밖의 밤하늘을 보았다. 사부로가 실습에 나가버린 덕분에 혼자 떠맡게 된 학급위원장위원회의 일에 낮에는 정신이 없었다. 어린 후배들에게 맡길 수도 없어 이반의 학급위원장으로서의 일마저 잠시 미룬 채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 시간. 덕분에 채 쓰지 못한 이반의 학급일지를 쓰느라 별구경이고 느긋한 휴식이고 뭐고 전부 물건너 가버렸다.
학급일지를 쓰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어 사실 그리 오래 걸리는 일도 수고로운 일도 아니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도통 기분이 나질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였을까. 무언가 빠진 듯한 허전함마저 느끼며 칸에몽은 밤하늘을 향하던 시선을 내려 쓰다 만 일지를 보았다. 하얀 종이에 검은 먹으로 쓰인 글자들이 성의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 하고 칸에몽의 시선이 다시 창밖을 향했다. 여느때와 같은 시간 속에서 한 가지가 빠져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퍽퍽 마른 땅에 굳센 삽을 꽂아 흙 채로 드러내 버리는 둔탁한 소리가. 이 시간 즈음이면 늘 들려오던 소리가 오늘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일찍 잠자리에라도 든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슬슬 습관이 베여 발소리 없이 방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칸에몽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바닥에 닫는 미미한 발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기척이 가까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얀 종이위에 먹자국이 한 줄 더 늘어나는 정도의 적은 시간이었다. 뒤에서 뻗어져 온 양팔이 어깨와 가슴팍을 감싸 안아 등과 가슴이 밀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물론 더 적은 시간.
“뭐야, 이번에도 후미코가 부러졌냐.”
뒤 돌아보지도 않고, 응하지도 않고, 그저 저 하던 일을 하며 흘리듯 묻는 말에 자신을 감싸 안은 두 팔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요.”
흘리듯 닿아오는 나른함을 담은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기운이 없지도,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담고 있지도 않은 언제나와 같은 건방진 후배의 목소리였다.
칸에몽의 한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먹이 말라가는 붓에 다시 먹을 묻히며 칸에몽은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물었다.
“그럼 뭐야.”
그 물음의 대답은 조금 늦게 들려왔다.
“그냥요.”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평이한 목소리에 칸에몽은 눈을 가늘게 하며 쭉 뻗어진 손을 놀렸다. 쥐어진 붓이 아슬아슬하게 종이에 닿아 먹을 묻히는 과정이 방금 전 보다 조금 멀리서 행해지고 있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입 밖에 내는 것 조차 귀찮아 칸에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에 얹혀져 있던 무게가 사라진 대신 자신의 자세가 흐트러져버린 것도, 어깨와 가슴에 둘러진 팔에 조금 더 힘이 실린 것도, 제 무게가 실려있을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단단한 가슴이 받치고 있는 것도, 지적하여 관두게 하는 것조차 이제는 귀찮아져버렸다.
“가서 잠이나...”
“낮에요.”
거 보라지.
칸에몽의 입가가 옅게 비틀렸다. 뭔 말을 한 들 들어먹지 않는 이 후배 놈은 언제나 지독히 마이페이스적이다. 저가 오고 싶을 때 멋대로 찾아와, 멋대로 엉덩이 붙이고 앉아, 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인다. 그러면서 칸에몽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고집불통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4학년 쯤 됐으면 조금은 상급생답게 굴어도 좋으련만, 제 관심 밖의 일에는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런 어린애가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물고 와 저에게 매달리며 조잘거리려는 지. 오냐, 어디 한 번 들어주마. 이제는 반쯤 포기한 기분으로 칸에몽은 아직 먹이 마르지도 않은 붓을 내려놓았다.
“토시쨩 155호를 파고 있었는데 밖이 좀 시끄럽더라구요. 그래서 살짝 올라가 봤는데 생물위원회가 있었어요. 어... 기르던 토끼가 죽었다고 그랬나? 엄-청 형편없이 판 구멍에 토끼를 넣고 하급생들이 엉엉 울고 있었는데 구멍이 너무 형편없어서, 저런 구멍에 묻어주는 게 싫어서 그런가? 해서 하는 수 없이 토시쨩 155호를 완성해서 줬거든요. 그런데도 하급생들은 계속 울어서.. 왜 울어? 하고 물어봤더니 토끼쨩이 죽어버려서 우는 거라고. 소중한 친구가 떠나버려서, 이제 더 이상은 만날 수 없어서, 그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오는 거라고.”
조용하게 울리는 목소리에는 슬픔이나 안쓰러움과 같은 감정은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잔잔하게.
“그 애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웃었어요. 고맙습니다, 하고는 뛰어가는데 가다가 한 명이 넘어져서. 거기에 또 자기들끼리 웃고, 그리고 일으켜주고, 다시 뛰어가는 걸 그냥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뒤에 타케야선배가 와 있더라구요. 제 머리 쓰다듬으면서 고맙다, 하고 웃었는데.. 어.. 뭔가 이상했어요. 생물위원회의 꼬마들도 그렇고, 타케야선배도 그렇고. 울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고마워하다가..”
“뭐라는 거야.”
“몰라요. 그냥 이상했어요.”
칸에몽의 머리에 제 뺨을 부비적거리는 후배의 행동은 마치 어리광부리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모르는 것에 마주치고, 그것에 기이함을 느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조르는 아이.
이제는 익숙해져 한숨도 나오지 않는 덩치만 큰 아이의 투정에 칸에몽은 붓을 내려놓아 빈손으로 제 머리 위에 놓인 머리통, 그 곱슬거리는 머리칼 안쪽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고개를 살짝 아래로 빼 위를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잡고 있던 머리통을 당겨 아래를 향하게 만들자 시선이 마주쳤다.
멋대로 눌러 앉아버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시야에 담은 무단침입자의 눈은 언제나처럼 덤덤한 채였다. 몰라요, 그렇게 말하던 주제에 혼란스러움이나 의문은 없이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인 눈이 칸에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아냐, 멍청아.”
그런 고요한 눈을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한 거리에서 똑바르게 마주보며 칸에몽은 말했다.
“소중한 사람이, 아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 떠나갔는데 그걸 보고 슬퍼하는 게 어디가 이상하다는거야. 이것이 마지막. 이제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어. 같이 웃을 수도 없고,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없어. 다툴 수도 없고, 화해할 수도 없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거다. 그게 슬픈거야. 너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싫은거야. 이별, 이라는 게 싫은거다. 그게 그렇게 이상해?”
곧은 목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 건조한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는 눈동자는 여느 때와 같이 흔들림 하나 없이 강한 빛을 품고 있었다. 속눈썹을 스치며 들려오는 목소리는 귀가 아닌 눈 안으로 스며들어와 그대로 머리를, 온 몸을 울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깜빡. 느릿하게 감았다 뜬 눈 앞에는 여전히 강한 선배의 눈이 있어, 키하치로는 그저 묵묵히 이어진 말을 들었다.
“운 다음에 웃는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언제까지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어. 그건 미련이고, 미련은 발목을 잡을 뿐이야.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걸어가야 하지.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면, 그래서 걸어 나갈 수 없다면, 결국은 같이 죽어버리게 될 뿐이야.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소중하다고 생각해 주었을거라 믿었던 그 사람이, 그 동물이, 그 무언가가, 그런 걸 바랄 리가 없잖아.”
강한 빛 안에 언뜻 상냥함을 비추며 칸에몽은 눈가를 옅게 휘며 웃었다.
“잘했어, 키하치로. 생물위원회의 하급생들이 소중한 친구와 함께 미련을 두고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줘서. 그 아이들에게 감사 받는 것도, 하치자에몽에게 감사 받는 것도 당연해.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아시겠습니까, 후배님아. 마지막은 조금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인 칸에몽은 잡고 있던 머리를 놔 주며 고개를 내렸다. 제법 오래 무리하게 올리고 있던 목이 살짝 뻐근한 듯 했다. 어깨와 가슴에 둘러진 팔을 느슨하게 풀어내 기우뚱하게 기대져 있던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목을 돌리며 뻐근함을 풀고 있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 가만히 칸에몽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키하치로의 팔이 다시 뻗어져왔다. 상냥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손길로 끌어당겨져 뒤통수가 다시 가슴팍에 닿았다.
“역시 잘 모르겠어요.”
한 팔은 칸에몽의 어깨에, 다른 한 팔은 칸에몽의 가슴팍에 두르고 제 뺨은 칸에몽의 머리 위에 얹었다. 처음 조잘거리던 때와 같은 자세로 돌아와 여전히 아이처럼 칭얼거린다. 정말로, 애가 따로 없었다.
“후미코가 부러졌어.”
“싫어요.”
“못 고친대.”
“싫어요.”
“더 이상 후미코는 없어. 땅 안 팔 거야?”
“......아니요.”
“모르긴 개뿔.”
한숨 쉬 듯 귀찮음을 가득 담아 뱉어낸 짧은 질문들의 대답은 빠르게도 돌아왔다. 그에 잠시 질린 듯한 얼굴을 한 칸에몽은 결국 한 숨을 내쉬며 다시 붓을 들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는지 키하치로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글자, 하얀 종이 위에 다시 먹이 칠해졌을 때, 천천히 키하치로의 입술이 열리며 자그마한 감정을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미코쨩이 부러지는 건 싫어요.”
“네-네- 그러시겠죠.”
너무나 예상대로인 키하치로의 말에 칸에몽은 성의 없이 대답하며 붓을 놀렸다. 한 글자, 또 한 글자. 그리고 한 마디.
“오하마선배가 죽는 건... 슬퍼요.”
칸에몽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 건 그 순간이었다. 작은 놀람을 담고 고개를 들어 어리기 짝이 없는 후배를 보려던 고개를 단단한 손이 잡아, 그보다 더 빨리 들어 올린 것 역시 그 짧은 순간의 일. 마치 어미의 동작을 따라 배우듯 칸에몽이 했던 양 저는 고개를 숙여 제 눈과 칸에몽의 눈을 맞추며, 키하치로는 말했다.
“선배는요? 제가 죽으면 오하마선배는 울어요?”
늦은 밤의 고요함 속에서 두 시선이 교차했다. 깜빡, 또 깜빡. 멀지 않은 산에서 우는 밤새의 울음소리가 잠시 실려 왔다 도로 나가버릴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그저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두 사람 중 입을 연 것은 칸에몽이었다. 흘리듯이, 뱉어내듯이. 천천히 열린 입술은 짙은 호선을 그려내었고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유쾌함마저 서려있는 듯 했다.
“네가 죽는 장소가 내 앞이라면, 까짓거 네 입에서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펑펑 울어주마.”
그것이 몇 년 전의 기억인지.
난자의 황금타임이라 불리는 시간은, 과연 닌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용했다. 밤새들이 작게 지저귀는 소리, 벌레가 우는 소리, 그리고 짙은 감정을 담은 물방울이 살갗에 떨어지며 퍼지는 작은 소리만이 고요한 밤을 울리고 있었다.
“진짜로 우네요.”
뚝. 뚝.
굵은 물방울이 제 뺨에 떨어져 흘러내리는 것은 가만히 맞으며 키하치로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피가 스며 뿌옇게 보이는 시야에 비춰지는 선배는, 그 날 그가 했던 말처럼 울고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끌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칸에몽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보며 키하치로는 멍하니 아쉽다고 생각했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은 많이 봤다. 싫은 기색을 담고 구겨지는 표정 역시 몇 번이고 봐서 그리 신선하지는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조차 할 수가 없어서 쓰러져 버렸을 때. 습관처럼, 버릇처럼 칸에몽을 끌어안아 함께 바닥에 손이 닿았을 때. 어지러이 흐려지는 감각 속에 들려오는 작은 밤의 소리 중에 한 가지, 낯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겹쳐진 것은, 닌타마였을 적에 들었던 다른 위원회 후배들의 소리였다. 토끼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던 아이들의 소리. 짙은 물기를 담아 주변 공기마저 적셔버리는 슬픈 소리.
감겨져 그대로 어둠속으로 빠져버리려던 정신을 애써 추슬러 눈을 뜨자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안에 칸에몽의 구겨진 얼굴이 비춰졌다. 키하치로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지독한 슬픔을 품고 엉망으로 구겨진 얼굴에 물기가 번져있는 것은 키하치로가 처음 보는 칸에몽의 표정이었다.
선배는 소중한 것을 잃을 때 운다고 했던가. 슬퍼서 운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자신이 죽을 때는?
키하치로가 아직 닌타마였을 적에 들었던 의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대로 키하치로의 안에서 이어져 와, 죽는 순간은 꼭 선배의 앞에서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게 했었다.
울어주었으면 좋겠네. 슬퍼해주었으면 좋겠네.
자신이 죽을 때 슬퍼 눈물을 흘리는 칸에몽의 얼굴은, 키하치로가 줄곧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신과의 이별이 슬퍼 운다는 것은, 칸에몽에게 있어 자신은 소중한 존재였다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친 그 얼굴은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그 시절에 하급생들이 서투르게 팠던 구멍만큼이나 형편없어서.
깜빡.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며 키하치로는 무거운 팔을 들었다. 이제는 감각마저 희미해져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조금씩, 조금씩 들어 올려 칸에몽의 젖은 뺨 위에 손을 얹었다. 칸에몽의 눈에서 흘러내려 손등을 타고 떨어진 붉은 눈물이 자신의 뺨에 붉은 자국을 남기는 것을 개의치 않고 키하치로는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네요.”
“뭐라는 거야.”
곧장 들려온 말은 자신이 알던 것처럼 조금 무신경하고, 다정해서 조금 안심이 됐다. 무슨 제 멋대로인 말을 하는 거야, 이 후배놈은. 그렇게 말하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칸에몽 입가가 겨우 옅은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보며 키하치로 역시 입가를 느슨하게 풀었다. 제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이건 좀 낫다.”
흐려지다, 흐려지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시야 안에 마지막으로 비춰진 것은 크게 뜨여진 칸에몽의 눈이었다. 잠겨 들어가는 의식 속에 투정이라도 부리듯 한 마디. 먹으로 범벅되어가는 세상에 커다랗게 울리는 울음을 들으며 키하치로 눈을 감았다.
“그만 울어요.”